그저 어렵게만 생각했던 경제학이었다. 그런데 식재료에 담겨있는 경제 이야기라니 눈길이 갔다. 경제학 교수가 들려주는 음식과 재료에 대한 경제 이야기, 마늘부터 초콜릿까지 우리가 일상 속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재료들에 대한 이야기들과 음식으로 우리에게 아주 밀접하게 연관된 경제 이야기들을 흥미롭고 영양 가득한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작가 소개
장하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경제학 석사 및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0년 이후 케임브리지 대학교 경제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03년 신고전파 경제학에 대안을 제시한 경제학자에게 주는 뮈르달 상을, 2005년 경제학의 지평을 넓힌 경제학자에게 주는 레온티예프 상을 최연소로 수상함으로써 세계적인 경제학자로 명성을 얻었다. 2014년에는 영국의 정치 평론지 <프로스펙트>가 매년 선정하는 ‘올해의 사상가 50인’ 중 9위에 오르기도 했다.
바나나와 경제
동파육, 나초, 시저 샐러드, 마르게리타 피자의 공통점이 무엇인지 아는가? 바로 인물의 이름이 들어간 음식이라는 점이다. 인물의 이름이 음식 이름이 된 경우는 꽤 많은데, 그중에는 우리가 잘 아는 미국의 가수 엘비스 프레슬리의 이름을 딴 음식도 있다. 바로 ‘엘비스 샌드위치’이다. 엘비스 샌드위치는 바나나와 땅콩버터를 넣은 샌드위치로 엘비스 프레슬 리가 늘 먹는 음식이라 ‘엘비스 샌드위치’라고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바나나로 샌드위치를 만들어 먹는 것이 생소하면서도, 짭짤한 땅콩버터와 조화를 이루는 맛이 궁금해진다. 보통 바나나는 그냥 먹거나 시리얼이나 요구르트, 아이스크림, 팬케이크 등에 곁들여 먹곤 한다. 하지만 이렇게 바나나를 ‘과일’의 개념으로 먹는 것은 바나나를 생산하지 않는 나라에서만 생각할 수 있다고 한다. 바나나가 주요 생산지인 나라에서 바나나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조리되기 때문이다. 바나나를 삶고, 굽고, 볶는 형태, 바나나를 원료로 해서 맥주를 생산하는 경우도 있다. 바나나는 원래 동남아시아에서 유래했는데 수천 년 전부터 재배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씨가 없는 변종이 선택되었다. 그 결과 바나나는 자연 번식할 수 없게 되었다. 즉, 재배용 바나나는 사람 없이는 번식할 수 없게 된 것이다. 19세기말 철도와 증기선, 냉장 기술의 발달로 인해 바나나가 썩지 않고 먼 곳까지 수출할 수 있게 되자 수출 경제에 매우 중요한 품목이 된다. 바나나를 미국으로 대량 수입할 수 있게 되자 미국의 기업들은 쿠바, 아이티, 온두라스,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등 여러 나라에 바나나 플랜테이션을 설립했고 곧 그 나라의 경제를 지배하게 된다. 경제의 모든 면에 관여하고 지배하게 되면서 그 나라의 정치에도 매우 높은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고 콜롬비아에서 일어난 ‘바나나 학살’ 사건까지 일어나게 되었다. ‘바나나 학살’은 1928년 노동자들이 파업에 들어가자 미국의 압력에 콜롬비아 군부가 파업을 강제 진압하면서 노동자들이 총에 맞아 목숨을 잃은 사건이다. 이런 나라들은 미국 바나나 회사들의 강한 영향력과 지배력으로 ‘바나나 공화국’이라 불렸고, 거대 기업의 투자가 어떻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다국적 기업을 통해 기술 이전과 직업 훈련을 비롯한 경제 성장을 유도하려면 정부의 정책이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딸기와 경제
딸기를 통해서는 로봇이 미래 일자리를 위협하게 되는지 알 수 있다. 딸기는 달콤하고 맛있는 과일이지만 재배과정에서 매우 고된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낮은 높이에 달린 딸기를 허리 숙여서 찾고, 멍들거나 무르지 않게 조심스럽게 따야 하기 때문에 시간도 더디고 많은 일손을 필요로 한다. 도심과 가까운 곳에서는 ‘딸기 수확 체험’으로 이런 문제를 부분적으로 해결하긴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기 어렵다. 하지만 딸기를 수확할 수 있는 로봇이 상용화된다면 수확하는 수고와 함께 노동력은 사라지게 된다. 많은 일자리가 과거부터 지금까지 기술의 발전으로 사라졌다. 하지만 그만큼 많은 새로운 일자리들이 생기기도 했다. 그러나 당장 로봇으로 일자리가 대체되고 실업자가 된다면 매우 곤란할 것이다. 재취업을 위해서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과 직업 훈련을 받기 위한 정부의 적극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저자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자동화는 일자리를 파괴하는 장본인이 아니다. 거기에 더해 기술이 홀로 일자리 숫자를 정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재정 정책, 노동 시장 정책, 특정 산업 부문에 대한 규제 등을 통해 원하면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다. 자동화의 본질을 제대로 이해해야 우리는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기 시작한 과학 기술 공포증과 젊은 세대의 절망감-우리는 필요 없게 될 거야-을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자동화를 비롯해 다국적 기업의 투자 등 자본주의 시장에서 정부의 정책과 개입이 얼마나 중요한 지 알 수 있다.
세계적인 산업 디자이너에게 파스타 모양을 의뢰한 이야기부터 시작해 현대 자동차가 어떻게 성장할 수 있었는지, 독일의 호밀로 인해 복지 국가가 탄생한 이야기, 쓰촨의 고추 요리로 시작해 사회생활의 중요한 기반이 되는 돌봄 노동에 관한 이야기 등을 통해 자유주의 경제의 문제점들과 정부와 정책, 제도와 관점, 소비자의 노력들이 경제에 얼마나 중요한지 알려주고 있다. 이 책은 식재료의 생산, 가공, 상업화와 판매, 소비와 관련된 경제학 책이 아니다. 맛있고 흥미로운 식재료로 시작하지만 여러 가지 경제학 관점을 제시하며 역사와 문화가 섞인 경제학 이야기로 넘어간다. 그리고 그 이야기 속에는 현대 경제학의 문제점과 그에 따라 우리가 알고 갖추어야 할 태도들을 제시하고 있다. 지금 잘 살고 있는 것 같은데, 경제학을 안다고 해도 한 개인이 경제 정책을 바꾸긴 어려울 텐데 왜 경제학을 알아야 할까요? 그건 경제학이 우리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세금을 비롯한 이자율, 노동 시장 규제, 친환경 개발을 위한 정책 수립 등을 비롯해 우리의 정체성과 사회 성격에도 영향을 끼친다. 경제학은 우리의 정체성을 비롯해 우리 자신을 보호하고 더 나은 사회를 위해서라도 알아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자는 이 책을 통해 경제학의 여러 관점을 제시하며 우리가 레시피를 보고 자유롭게 요리하듯, 경제학에 대해서도 자유롭게 비판하고 배우길 바라는 것이다. 한 가지 식재료에 여러 조리법이 있듯 열린 마음으로 다양한 경제학의 관점을 배우고, 질 높은 재료를 사용하듯 왜곡되고 잘못된 이론은 아닌지 확인하며 상상력을 발휘해 더 나은, 더 좋은 경제학을 위한 응용, 사회 이슈와 제도에 대해 균형 잡힌 관점을 갖출 수 있기를 원하는 것이다. 결국, 이 모든 것이 자신을 포함한 모두가 행복해지는 사회를 만드는 일일 것이다.
“ 경제학은 개인적이건 집단적이건 경제적 변수에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체성, 다시 말해 우리 자신에 대한 규정 자체를 변화시킨다.”
“인간은 이기적 존재라 추정하는 신고전학파 경제학이 지난 몇십 년 동안 세계를 주름잡으면서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적인 행동이 정상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이타적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은 ‘루저’라고 조롱당하거나 저의를 품고 있다고 의심받는다.”
“이런 학파들의 시각을 따른다면 사회를 어떻게 설계하는지에 따라 여러 동기 중에 특정한 것을 장려할 수 있고, 심지어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동기 자체를 바꿀 수도 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다시 말해 경제학은 사람들이 무엇을 정상으로 보는지, 서로를 어떤 식으로 보는지, 그런 사회에서 받아들여지기 위해 사람들이 어떤 식으로 행동하는지에 영향을 준다.”